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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나에게 찾아온 너라는 우주




<나에게 찾아온 너라는 우주>


“이날보다 저 날이 좀 더 좋은 것 같은데,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날짜는 이날밖에 없대.”

 

곧 출산을 앞둔 친구가 고민을 얘기했다.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한참 전부터 제왕절개 출산을 결심해 두었다. 

다만 사주에서 말하는 좋은 날을 아기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데, 주치의의 일정도 고려하다 보니 계획에 이런저런 차질을 겪는 모양이었다. 

출산 일정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나가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도 계획이라는 것이 있었지. 그렇지, 그랬었지…’

 

4.2kg의 우량아로 42주나 엄마 배 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 나를, 엄마는 단 2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임신과 출산에 관심을 갖고 부터 엄마는 나에게 ‘출산의 여신’같이 느껴졌다. 

그 작은 몸으로 이 큰 아기를 그토록 오래 품은 것도 모자라, 병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단 2시간 만에 불쑥 자연분만으로 해결을 보다니. 유튜브에서나 보던 서양 여성들의 놀라운 골반과 수월한 출산 사례만큼이나 부러운 대상이 

마치 엄마가 된 듯하여 신기하고 뿌듯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여성의 자궁과 출산 능력은 유전된다는 속설.

 

서른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임신했던 나는 막연히 엄마의 출산 능력에 심리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는 조금도 없지만 

왠지 자궁의 생식능력은 유전이 강하다는 항간의 소문이 나의 순산을 지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예정일이 가까울 때까지 별다른 이벤트 없이 

임신 과정을 거쳐온 것도 그런 막연한 기대를 뒷받침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평화로운 순산 계획’은 기대가 아니라 정해진 사실처럼 다가오는 듯했다.

 

그토록 찬란했던 나의 계획과는 달리 출산을 거쳤던 지난해 유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과 마음고생으로 얼룩진 달이 되어버렸다. 

39주 차에 찾아온 출산 징후에 순산을 기대하며 방문한 병원에서는 내진 후 30분도 안 돼서 자연분만 시도는커녕 응급 제왕을 위해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짧고 강렬한 고통’ 후에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나의 상상은 수술 후 배 위에 올려진 돌덩이 같은 복대를 보며 눈 뜨는 현실로 바뀌었으며, 

진통과 출산으로 허기진 배를 맛있는 식사로 채우는 상상은 ‘가스 배출 후 미음만 섭취 가능’이라는 단호한 치료 방침 아래 무력할 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술 후 회복이 더뎠던 나는 일반 산모들보다 하루 더 입원해야 했다. 출산 전에는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으나 

수술 후에는 예측하지 못한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염증 수치가 높게 나와 일반의 산모들보다 항생제를 더 많이 투여해야 했고, 

거동도 불편한 상황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검사를 더 받아야 했다. 염증 수치가 해결되고 나니 

이번엔 철분 수치가 현저히 낮게 나오는 바람에 수혈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어느새 양팔은 주삿바늘 자국으로 시퍼렜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수술을 경험해 본 적 없던 내게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고통과의 사투 같았다. 가끔 멀쩡히 돌아가는 창문 밖 세상을 보며 

‘과거의 건강한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랬다. 가슴에 사무치는 우울감은 ‘평화로운 출산과 그 후의 계획’에 전혀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계획하지 못한 놀라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낳은, 나의 아기’라는 존재였다. 부실한 몸을 이끌고 수유실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던 아기는 

품에 안는 순간 세상에 나와 아기 단둘만 존재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강렬했다. 인간이 이토록 작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었구나. 

눈 깜박임, 오물쪼물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움직임, 태지가 떨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피부, 모든 것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놀라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기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생각이 정지되고, 내 몸과 정신이 모두 온전히 아기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모든 감각이 살아서 한 곳에 집중되는 듯한 이토록 강렬한 체험이 또 있었을까. 다시 돌이켜봐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또한 내가 계획할 수 있는 종류의 체험이 아니었다.

 

어느덧 200일을 훌쩍 넘기고 8개월 차에 접어든 아기를 바라봤다. 무거운 눈꺼풀을 올려 뜨는 것도 어려워하던 아기는 이제 사람을 구별하고 

엄마에게 눈웃음을 치며 호감을 표시한다. 부서질 것처럼 가늘던 팔은 탱탱하게 살이 차오르고 제 한 몸을 지탱하며 기어갈 준비를 할 만큼 단단해졌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먼저 잡아주며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지옥 같았던 출산과 회복의 한 달을 떠올린다. 감개무량하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나는 어디 상상이나 됐던가.

 

돌이켜보니 아기가 세상에 온 후로 내 삶은 모든 순간이 예측 불가가 된 것 같다. 힘듦과 고통도 지뢰밭처럼 널린 것이 사실이지만, 

그 어려움을 거뜬히 넘게 하는 예상치 못한 기쁨과 행복을 마주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라는 혼돈의 과정에서 

어느덧 예측하지 못할 순간들을 즐기고 있는 내가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아기만큼 빠른 속도는 아닐지라도 나 역시 한 뼘만큼 성장한 게 아닐까.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지도 모르니, 그냥 내려놓고 ‘아기’라는 무궁한 우주를 마음껏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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