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7. 엄마 안전벨트 더블하트 러브레터 - 더블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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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 엄마 안전벨트



엄마가 ‘너 어렸을 때, 그때 기억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신기할 정도로 내 기억에는 없다. 어째서 내가 몸으로 살아낸 시간들이 이렇게 쉽게 지워질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얼기설기 구멍 난 기억의 이불을 수선하는 기분이 된다. 나는 그런 어린이였구나, 어릴 때 그런 면이 있었네, 하고. 

또 반대로 나는 분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엄마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없다. 일곱 살 무렵,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만원 전철을 탔던 날처럼.

 

그날은 아마 퇴근시간을 걸쳐 이동한 탓인지 지하철에 사람이 많았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조금 더 옆 사람과 가까워지는 듯했고, 조금 더 숨쉬기 불편해졌다. 

그러다 순식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워도 되는 건가 걱정될 정도의 사람이 가득 찼다, 언젠가 길에서 봤던 쥐처럼 납작해질까봐 무서웠다. 금세 눈앞은 앞사람의 까만 옷 색깔만 보였다. 

사람들은 “어어어, 밀지 말아요.” 소리만 냈다. 그때 찢어지는 듯한, 날것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우리 애들 다 죽어요!!! 그만 밀어요.”

 

고함을 치는 사람은 엄마였다. 우리 남매가 어른들 사이에서 더는 찌그러지지 않도록, 지하철 봉을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 우리를 안으면서 정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의 작고 연약한 체구가, 아주 단단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숨이 쉬어졌다. 위험에서 안전벨트가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안전벨트. 돌이켜보면 엄마가 억척스럽게 힘을 내고, 평소와 다르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은, 우리를 지킬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을 감지하고 보호하는 엄마 사자처럼.

 

며칠 전, 건희와 시내버스를 탔을 때였다. 자리에 앉은 건희가 두리번거리다가 왜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는지 물어봤다. 

책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차에 타면 안전벨트를 매야한다고 교육을 받은 터라, 버스에 안전벨트가 없는 것이 영 이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안전벨트가 있는 버스도 있지만, 마을 안을 운행하는 버스들은 승객들이 금방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없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 사이에도 버스는 덜컹여서, 

어른보다 가벼운 건희의 몸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어쩌면 건희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 

안한 마음에 던진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내 팔을 건희 몸 앞에 안전벨트처럼 척 둘렀다. 

 

"우리 금방 내릴 거야. 엄마가 그때까지 건희 안전벨트 해줄게. 걱정 마."

 

내 얼굴과 팔을 가만히 번갈아 보던 건희가, 

 

"엄마도 안전벨트가 없잖아요. 그럼 나는 엄마 안전벨트 해줄게요." 라며 작은 팔로 내 몸을 똑같이 감쌌다. 

건희의 짧은 팔은 내 몸을 다 감싸지 못하고 절반만 와서도 꿋꿋하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에 팔을 두른 채로 창밖을 구경하며, 세 정거장을 지났다. 나른한 햇살이 지고 있는 오후였다.

 

건희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의 안전벨트였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나 키우면서 감동 받았던 순간이나 힘이 되었던 적.”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까… 모르겠네.” 난감한 목소리로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엄마가 말했다. 

“아, 맞다. 그때 너무 어려서 네가 기억하려나? 내가 엄청 아팠던 적이 있었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서 끙끙 거리고 있는데, 세상에 그 쪼그만 애기가 나한테 와서 자기 우유를 안 먹고 내미는 거야. 엄마 먹으라고. 그때 좀 놀라고 감동했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그때 기억나? 로 시작하는 얘기들은.

 

그래도 그때 그 꼬마가 아픈 엄마 곁을 지켜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공백을 우리가 서로 메꿔주며, 잠시 마음을 덥힐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건희와 잡은 손을 더 꼭 쥐었다. 내가 건희에게 건희가 나에게,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안전벨트가 되어주는 거구나. 

앞으로 살다보면 엄마라는 역할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겁이 나는 순간도 있겠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아 씩씩한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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